02 — 현장 이야기
지난겨울, 샤워를 마치고 유리문을 열려던 순간 발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옆으로 쏠린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문틀을 붙잡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샤워부스 안에서 손으로 짚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며칠 뒤 같은 자리에서 또 한 번 휘청이고 나서야 이건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실제 시공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는 업체에 연락을 했고, 담당자분이 방문해서 샤워부스 크기와 유리문이 열리는 방향, 제가 주로 서는 위치를 꼼꼼히 확인하셨습니다.
코너 쪽 벽면에 L자형으로 안전바를 달면 샤워할 때와 문을 열고 나올 때 모두 손이 닿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위치를 정했습니다. 시공은 한 시간이 채 안 걸렸는데, 벽 안쪽에 단단히 고정하는 작업이라 나사를 박기 전에 벽을 두드려 확인하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수납장이 있는 벽면은 피해서 위치를 잡아야 한다는 설명도 들었는데, 생각보다 고려할 게 많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샤워 의자를 나중에 들여놓을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의자를 놓을 자리까지 감안해서 안전바 높이를 살짝 낮춰 잡아주셨습니다.
담당자분은 안전바 재질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는데, 물기가 많이 닿는 위치인 만큼 표면에 미끄럼방지 가공이 된 제품을 권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냥 튼튼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손이 젖은 상태에서 잡는 순간의 그립감이 훨씬 중요하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왜 제품마다 표면 처리가 다른지 이해가 됐습니다. 색상도 화이트, 그레이, 블랙 중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해서 샤워부스 타일 색과 어울리는 톤으로 골랐습니다. 실리콘으로 마감한 뒤에는 하루 정도 물을 묻히지 말라고 안내받았고, 그다음부터는 샤워를 마치고 문을 열 때마다 자연스럽게 안전바를 짚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겨울철 물기가 많은 날에도 마음이 훨씬 편해졌고, 이제는 오히려 안전바가 없던 시절이 어떻게 괜찮았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가족들에게도 추천해서 요즘은 친정 부모님댁 샤워부스에도 같은 방식으로 시공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시공 담당자분께서 남기고 가신 사진을 나중에 다시 보니, 코너 안전바 하나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동작을 커버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샤워를 시작할 때, 몸을 씻는 도중 자세를 바꿀 때,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모두 같은 손잡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매일 반복하는 샤워 시간 전체를 더 안심하고 보낼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